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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아침까지 몸이 무거웠습니다.

  그 전 날, 우리 반 아이들과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참회와 반성으로 모든 아이들이 허벅지를 3대맞고, 담임인 나도 5대를 맞았습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사는 의미가 없다며 저와 아이들 모두 눈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시련을 통해 가르침을 주기엔 아직 100일도 안된 새내기 교사는 견뎌내기 너무 힘들었는지 그날 저녁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그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TV를 보며 그 노곤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텔런트 여운계님께서 암으로 별세하셨다는 소식 외에는 별 다른 소식이 없었고, 케이블TV를 보며 좀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전 날 퇴근 뒤 바로 잠이 들었던지라 아이들이 우리반 카페에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우리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반에서 나름 인기가 많은 남자 아이가 '오늘의 슬픈소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그 글이 어제의 일에 대해 올린 것이라 생각하고 클릭했습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뜻밖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자살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을 쓴 것입니다. 평소에 장난기 많은 친구라 장난을 친 것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또 이 장난은 너무 심한 거라는 생각에 월요일에 학교 가서 좀 크게 야단을 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5분 동안 반 카페를 구경하고 있던 찰나, 옆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대." 평소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동생인지라 저를 비롯하여 저희 어머니께서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동생의 발언을 일축하였습니다. "그럼 네이버 메인페이지에 들어가봐."라며 맞대응을 하는 동생의 말에 저는 기가 찬듯이 네이버 메인화면을 검색했습니다. (저의 컴퓨터는 인터넷익스플로러를 클릭하면 반 카페가 홈페이지로 설정되어 반 카페부터 뜹니다.) 그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얼른 TV를 MBC로 돌렸습니다. 속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꿈인가 했습니다. 어제 호되게 아이들을 다그쳐서 아직도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줄 알았습니다. 말 문이 막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방금전까지 무거워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습니다. 멍했던 정신이 갑자기 살아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어제 새내기교사로서 견디기 힘들었던 가르침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될 정도로 정말 큰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러한 충격적인 슬픔을 미리 알고, 때문에 어제 그렇게 우리반 학생들과 제가 울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했습니다.

  왜 '당신이 바라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가셨습니까?

  당신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시는 동안, 아니 그 전부터 당신은 거대한 바윗덩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지키고 서있는 바윗덩이, 정의를 무시하는 바윗덩이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 바윗덩이를 깨부수기 위해 달려들었습니다. '바보'소리를 들어가며, 다른 사람들은 전혀 깰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오히려 바윗덩이를 지키는데 일조하고 있을 때, 당신은 묵묵히 그 바위를 깨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평등'이라는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 '노무현'을 바라보며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실낱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던 정의는 당신의 재임기간동안 실현하기 힘들었습니다. 권력을 빼앗긴 주류세력이 당신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럴 때 마다 승부수를 던지며 당당히 맞섰습니다. 반대세력은 물론 지지세력까지 등을 돌렸지만, 자신의 신념과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전혀 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지만, 당신의 퇴장은 그리 쓸쓸하지 않았던 것도 당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진정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당신 자신이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자책하시는 글을 올렸을 때에도, 당신이 (아니 당신 가족이) 돈을 받았더라 하다라도 당신이 심어준 그 희망은 당신 스스로 버리지 않고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 그 동안 그랬던 것처럼 지켜주시길 바랬습니다. 그 당신이 주신 희망 때문에 당신의 자조섞인 글에도 당신의 지지를 놓치 못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잘못은 그 전에 대머리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작은 액수였던 것을 '검찰이 추측했다'는 것도(그 사실 조차도 언론에 의해 추측과장되었다는 것도) 당신을 아직 버릴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그 희망의 버팀목이라 믿었던 당신,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진정한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는 그 희망은 다시 꿈으로 멀어졌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고통스러운 MB정부 속에서도 그나마 빛이 보였던 그 희망은 다시 사그라들었습니다.

  왜 던지셨습니까? 당신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묵묵히 지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물며 당신이 너무 심하게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동정하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던지셨습니까? 대한민국을 걱정하며 그 괴물같던 바윗덩어리 주류세력과 당당히 맞서던 그 배짱은 어디로 가시고 그렇게 허무하게 몸을 던지셨습니까? 아니면, 마지막 정치적 카드였던 겁니까?

  당신이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라본 사람들을 버리고 간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이 당신 인생에서 그렇게 공들여 노력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당신 스스로 버리고 가셨다는 그 사실이 원망스럽습니다. 당신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당신보다, 당신보다 제가 더 나쁜사람입니다

  뉴스를 보면서 당신이 결심을 하고 몸을 던지시기 까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마음을 따라가보았습니다. 당신이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싸우고, 비상식적인 대한민국의 역사, 구조를 바로잡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돌아오는 건 엄청난 비난과 발목잡기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의 뒤로 물러서셨는데도 이놈의 MB정부는 당신을 달달 볶으며 당신의 모든 것을 벗기려 했습니다. 많은 고민과 번뇌로 가득한 최근의 당신의 모습은 정말 많이 힘드셨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당신의 손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 가슴 속에만 남아있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을 당신은 직접 실천에 옮겼습니다. 정치적인 행동이나 정책은 결국 보수(수구)와 진보 모두 등을 돌렸지만 '탈 권위적인 대통령'의 모습과 과거를 청산하려는 당신의 노력은 '진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당신의 노력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을 보이거나 비난을 거듭할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외로움을 견디며 지금까지 버텨오신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무관심한 사람 중에 하나라 고백합니다. 당신의 정치적인 발걸음에 동의하면서도 정작 탄핵정국에는 촛불도 들지 않았고, 당신이 수구세력에게 크나큰 압력을 받고 있을 때에도 뭔 일 있냐는 듯, '알아서 잘 하시겠지.'라는 생각에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이 블로그에 열을 내며 올리던 글도 거의 절필 선언이라도 한듯 뚝 끊었습니다. 이 사실마저도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당신을 지지하면서 은둔하며 지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당신보다 제가 더 나쁜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 고되고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신 것도 모르고 무관심한 것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앞으로라도 이 MB정부에서 벌이는 악독한, 자기네들만 생각하는 일들을 벌일 때마다 적극적인 참여를 하려 합니다. 당신이 꿈꾸던 대한민국은 저도 꿈꾸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팔호광장에 당신의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당신을 향한 촛불을 들지 못한 걸 후회하며, 가시는 길이라도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오늘 옷을 갖춰입고 퇴근하는 길에 찾아뵙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2009년 5월 26일 자정
故노무현 前대통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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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맑은마루
 올해 초 였을거다. 중학교 부터 지금의 대학에 이르기까지 10년이나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창인 체육과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친하다고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이러한 10년지기 동문도 인연이면 큰 인연이다 싶으니까. 단 둘이 밥 먹은 것도 아마 교대입학하고 처음일거다. 식당에 앉아 밥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교대에 관한 기존의 불만을 늘어 놓았다. 이 불만도 예전에 비하면, 또 얘가 학교생활에 엄청나게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정말 많이 줄이고 완화하여 말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는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안 그랬다며 내가 비관론자(Pessimist)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만약 네 선배였다면, 나는 너를 XX게 패고도 남았을거다."

  이런 말에 나는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했다. 이제 교대인생도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되짚어보건대, 후배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면, 선배로서는 짜증날만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교대생 다 같이 살겠다고 벌이는 투쟁에 되는 족족 뭐라 지껄이지 않나, 뭐 행사하겠다고 돈을 걷는다는데 태클을 걸지 않나, 행사는 제대로 나오냐, 선배한테 싹싹 거리기라도 하나.. 뭐 나는 선배들하고 제대로 말을 터 본적도 없으니까 말 다했지. 실제로 바로 윗 학번 집행부는 (학년 초에 잠깐) 나를 못 잡아 먹었다. 그 당시 선배들이 오해해서 과도한 반응을 보였고, 또 선배들이 한 행동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도 후배로서 뭐 딱히 잘 한건 없는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되먹지 못했'을 게다.

  "음.. 그래, 선배한테 잘 하지 못했으니.. 후배한테라도 잘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었다. 학년 초에 12미팅이나 13미팅에 나가기는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 이후로도 행사는 제대로 나가지 않았고, 설령 나갔다 한들 말도 안 걸었다. 적극적으로 나서 친하게 지내려는 후배도 있었지만, 오히려 내가 사양한 꼴이다. 밥도 제대로 안 사주었고, 그냥 만나기 불편한 선배일 뿐이다. 정말 되먹지 못했다.

  내가 만약 다시 1학년으로 되돌아 가서, 선배한테 싹싹하고, 후배에게 친근하게 대했다면, 지금의 내 교대생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과 대항 체육대회에 열을 올렸을까? 윤리과에게 축구에서 패했다고 씩씩거리는 체육과 친구에게 약오르냐고 되물었을까? 아니면 선후배간의 친목모임에 즐겁게 참여했을까? 아마 그랬다면 교대생활은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다시 1학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 지내온 시간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에 와서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내 동생 표현으로)지잡교대생이라도, 교대는 정말 싫었다는 의시표시를 하고 싶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단호하지 않더라도 거절의 의사 표시를 하고 싶은, 내 알량한 자존심과 '되먹지 못한'사람과 어울리다 후배도 같은 꼴 될까 두려워한 선배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RM Project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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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맑은마루

  그 동안 대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선생님이 되기 싫은 나 자신을 한탄만 하였다. 그냥 어서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랐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삶을 방치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어느 덧 마지막 학년 마지막 학기가 다가왔고, 선생님이 될 자격이 코 앞에 다가온 상태에서 한 번 선생님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짚어보고, 이것을 토대로 선생님이 되면 내 인생에서 순기능이 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말'을 하는 직업 : 수줍음 안 돼
   일단 말을 한다는 건 사람이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학생)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해야 한다. 이는 큰 '철면피'가 필요하다. 수줍어서 쭈뼛 거리면 학생들이 선생님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수줍음은 교사의 큰 적이다. 남 앞에서 적어도 수줍음을 타면 안 된다.  나는 수줍음을 잘 타서 처음 보는 사람이나 조금이라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말을 잘 꺼내지 못한다.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학년 초에 처음 만났다고 수줍어 한다면,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이 있을까?

  2. 학생이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 : 휘어잡는 카리스마
   교실에는 선생님 만의 Stage(무대)가 있고, 그 무대 앞에서 원맨쇼를 하든 뭘 시키든 간에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선생님을 보며 학습하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도입부분에서 갖은 동기부여 자료를 쏟아 놓는다. 하지만 그런 어느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학생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매료되어서 학생들이 절로 선생님을 따라올 수 있는 그 '카리스마'. (단, 이 카리스마는 교사 특유의, 각자 특유의 카리스마가 되어야 할 듯싶다.) 나는 학창시절에는 가지기 어려웠던 카리스마를 적어도 대학 4년 (주일학교 교사 2년, 각종 실습)  동안 조금씩 조금씩 형성 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3. 학생들을 잘 인도해야 한다는 책임감

  우리는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준 은사님을 찾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반면 선생님의 잘못된 행동으로 평생에 상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선생님의 모습에 따라 자신의 평생의 인생행로에 영향을 받는다. 교사가 말 한 마디를 어떻게 했느냐, 학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학생의 성격, 학생의 진로가 판가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여야 한다.

  4. 학생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선생님은 언제나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면서 잘못된 행동이 있으면 시정해 주고, 잘 된 행동이 있으면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선생님의 질책, 칭찬이 있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 자신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옳다고 무조건 강요만 하지는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전에 스스로가 양심에 찔리지 않겠는가? 선생님 스스로가 행동으로 옮긴다면, 선생님이 굳이 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고 행동할 것이다. 나는 생각해 보면 그 만큼 나 자신을 각성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힘을 학생들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5. '배워서 남 주는' 준 봉사정신
  '배워서 남 주냐?'는 말이 있다. 자신이 수업료, 등록금을 내고 피 땀흘려 공부했는데, 이렇게 스스로 고귀한 지식을 선뜻 알려주겠냐는 거다. 그러나 교사는 '배워서 남 주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최근 내가 다니는 교대 일부 학생들이 자신의 것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행태를 보면 참 씁쓸하기 그지 없다. '배워서 남 주는' 그런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게 선생님인데, 그렇게 자기 것만 챙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맡는 학생들이 불쌍할 정도다. 선생님은 비록 '봉급'을 받는 사람이지만, 그 '봉급'을 받는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그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봉급의 댓가 그 이상, 그 이하도 학생들에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6. 세상이 바라보지 않는 낮은 곳에서의 '희망'
 
 세상은 점점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변하고 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 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갔지만, 이제는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강남의 학생들은 온갖 사교육으로 도배질을 하고 살아가지만, 당장 서울 강북의 달동네, 공장 노동자의 자녀, 저 농·어·산촌의 어린이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학교 공부도 따라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말 자신이 선생님이라면 (특히 '진보'를 지향하는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학습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 아직도 계층변화의 유일한 희망이 교육이라면, 그들에게 길을 터 줄수 있는 '희망'을 안겨주는 사람. 그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 교사가 아닐까 한다. 또 이 부분이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아닌가 싶다. 그 동안 생각하지 않았다가 번뜩 원서를 쓰기 며칠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로만 내 인생의 순기능이 될지를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실 선생님이 되어서 이러한 자질을 실현하기 위해 '억지로' 하게 된다면 순기능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노력하는 자,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했다. 그 순기능을 '억지로'하는게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자세. 즉, 저절로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내 인생의 순기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하다. 그것은 곧 학생들을 진정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정말 내 자식이 된 것마냥 챙겨주고 보살펴 주고, 사랑해주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러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자리 잡았고, 이것이 저 위에 써 놓은 교사로서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선생님이 된다는 게 내 인생의 순기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Posted by 맑은마루

두려움

喜噫希 / 2008/02/16 23:41
  나에게 있어 나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이다. 모든 것에 있어서 소심한 행동을 보인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것을 아예 모르고 살았고, 중학교 때에는 조금씩 알고 살았지만 크게 심각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내가 많이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갓 올라와서 였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좀 다부지게 먹고, 헤쳐나가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 (지금 생각하기에) 별짓을 다했다.. 그 와중에 알게 모르게 희생된 친구가 있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그런 소심함을 고등학교 나머지 기간 동안에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렇게 깨부수고자 하는 마음은 오래 지나지 않아 서서히 도로 뭉개지기 시작했다. 교대에 입학하면서 나도 모르게 도로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소문에 민감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나에게 해가 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조금이라도 학점에 지장이 있다면, 그 행동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했고, 남들이 안 하는 것에는 할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지낸 지금, 겨울 수련회에 가서 내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왜 조그마한 일에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사회적인 취업난에 떠밀려 그나마 취직하기 쉽다는 교대에 들어와 억지로 버텼는데, 노무현씨와 맹박이가 선생 적게 뽑아서 그마저도 보장되지 못하니까 소심의 극치를 달리며 인생 피곤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돌이켜 보면, 야망과 포부를 가지고 공부에 임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단지 선생자리 하나 달랑 얻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에 비해 훨씬 보람되고 가치있었다. 나는 작금의 임용을 위한 공부보다 더 큰 꿈을, 더 큰 포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없을까?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Posted by 맑은마루

시무식 인사말

2007/11/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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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블로그를 하나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홈페이지를 운영하였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사진을 찍어 예쁘게 꾸미고, 짤막하게 글을 적어 내린 페이지를 볼 때마다 미니홈피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렇지만 홈페이지는 운영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홈페이지에 사진 대신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2005년 이 맘 때쯤이었을 게다.

  그렇게 글이 하나 둘 씩 쌓여갔고, 점점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 시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시사적인 글도 많이 썼고, 또 현재 다니는 학교가 특수한 곳인지라 교육에 관한 글도 꽤 썼다. 홈페이지를 게시판 형태에서 블로그 형태로 바꾸면서, 사람들이 찾아와 댓글도 남기며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런 재미로도 글을 많이 썼다.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다니기 싫었던 학교도 차차 익숙해질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글 쓰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 동안 가졌던 내 나름대로의 사회적 비판정신과 삶에 대한 고찰이 사라지기 했다. 글을 쓰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내 블로그는 2007년도에 올라온 글이 10개도되지 않는 주인장 없는 집이 되고 말았다. 왜 이러는지를 고민하고 한탄하며 글을 다시 쓰려고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정말 왜 이렇게 됐을까?

  전에는 올린 블로그의 글에 사람들이 댓글을 달면, 내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이 반이었고, 비판하는 글도 반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올린 내 블로그 글들 중에는 의외로 꽤 악플이 많았다. '명문대 입학한 권리(?)'라는 글은 악플이 90%이상이었다. 어떤 이는 아주 끈질기게 들러붙어 내 글과 내 글에 동의하는 다른 이의 댓글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기까지 했다. 정말 지긋지긋했지만, 이것이 내가 글이 잡히지 않는 원인은 되지 않았다. 악플이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하고서도, '예수님은 욕하지 마라'라는 글을 쓴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올해 들어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주일학교 선생님도 더 열성적으로 해서 그런 것 같아도, 3학년이라는 위치에서의 학교생활이 너무 고단해서인거 같아도, 역시 아닌 듯싶다. 사실, 맘만 먹고 글을 쓰겠다고 하면 바쁜 건 핑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글에는 마음이 있다. 어떤 글이든지 글쓴이의 마음이 투영되어있지 않는 글이 없다. 내가 썼던 글도 마찬가지다. 소위 1년 반 동안 내가 문장도 시원치 않은 글을 쓰면서 항상 들어갔던 건 내가 쓰고자 하는 대상이 미래에는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미래에는 더 민주적인 교대 학생들이 되기를, 미래에는 한나라당이 추악한 정치를 펴지 않기를, 미래에는 기독교가 바른 종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으로 글을 쓸수록, 이 세상은 내가 바라는 그 마음대로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교대생들은 올해도 투쟁을 하고, 그 투쟁을 위해 벌금을 걷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여전히 추악한 정치를 펼치고 있고, 한국의 목사들은 지금도 배만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여기에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사회적인 행태를 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고 있는 일반 대중들이다. 불의를 앞에서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취직 못하면 어떡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하며 자신의 몸을 사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다. 특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취업준비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대학생들 (특히 교대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없이 축 쳐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휘말리는 나도 점점 불의를 볼 때, 미래가 좋아지기를 바라기 보다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올해도 투쟁 벌금을 내라고 하지만, 얼빠진 사람마냥 아무 말 없이 순순히 내어 버렸다. 그냥 내 앞에 주어진 일에 급급하여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처럼 뚝딱 과제를 해가고 모의수업을 하기에만 바빠진, '현실에만 급급한' 한심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한심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미래'는 잡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맑은마루
TAG 미래

  모르겠습니다. 15주가 흘러갔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6월의 그 나즈막한 더위가 잠깐 사그라들고, 장마가 시작된 첫 날, 비가 올까 조마조마하며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학교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 보고서 2개를 냈습니다. 한 달을 새벽4까지 어떻게 수업할까를 고민하며, 머리를 맞대고 싸우기도 하며, 엄청난 교구를 만든 과목의 마지막 레포트와 그 동안 수업 외에는 아무런 시험, 과제가 없어 마지막에 평가의 잣대로 삼고자 하는 과목의 레포트를 냈습니다. 아마 이 마지막의 두 과목의 레포트가 이번 한 학기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정말 힘들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가운데에서 해낸 과목이 있는 반면, 그냥 껌 씹듯이 넘어간 과목... 이번 학기는 과목마다 이렇게 극과 극이었습니다. 허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껌 씹듯이 넘어간 과목의 교수님들은 우리가 다른 과목에서 힘들게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아시고, 참작해 주신 고마운 교수님들이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한 학기를 보내셨습니까? 아, 힘들다, 미치겠다, 학점은 잘 나왔는지 모르겠다.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또 지난 학기 끝날때처럼, 시간이 표범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니다 제트기보다 더 빠르다고 느끼시지는 않았는지요? 저도 '시간'에 대해서 참으로 느끼는게 많습니다. 지난 학기에도 빨리 간다고 적어 놓았는데, 이번 학기는 지난 학기보다 더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정말 시간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네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내 금쪽같은 젊은 날의 시간은 날 이렇게 마구잡이로 떠미는지... 정말 시간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허나, 생각해보면 내가 그 만큼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원망하고 탓하기 전에, 그 지나가는 시간을 내가 붙잡으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그런 느낌을 항상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하루를 의미있게 사용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하루의 절반은 TV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에 여러분은 얼마나 대답할 수 있으신가요? 저는, 저 대답에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오히려 '아니다.'라는 대답 뿐이겠지요.  내 스스로 시간이라는 가치를 죽이고 살아오면서, 그 죽여 놓은 시간이 어디갔나 찾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이번 한 학기는 그 시간을 많이 죽여놓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이 과제, 저 과제, 특히 영어모의 수업 발표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내가 의미 있는, 내 자신에게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의 魂, 자신의 능력, 힘, 모든 것을 쏟아냈다면,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고 느낄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여나, '나는 魂을 쏟았어도 시간이 빨리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거라 확신합니다.

  벌써 여름방학입니다. 저는 또 2학기 개강에 임박해서, "벌써 여름방학이 끝났네.."라는 말보다, "아, 이번 여름방학 참 길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 여름방학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ROTC 훈련 받는 분들 힘 내라는 말과 함께, 이만 줄이겠습니다.

   8월 말에 좋은 모습으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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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교대, 종강

나이와 친분

喜噫希 / 2007/03/22 00:52
1. 나이 차이가 있는 분들이 있다. - 적거나 혹은 많거나 - 자주 보는 편이라 그냥 있을 때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마주쳐야할 일이 있을 때에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예민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까봐 매사에 두렵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그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린다.

2. 나이 차이가 나보다 약간 높은 분들이 있다. 일주일에 한 두번이기는 하지만 보기만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꼭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 같고, 언제나 말할 때 마다 웃음이 넘치며, 때론 진지하시기도 하다. 너무나 편해져서 인지, 때로는 장난을 치기까지 한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신분이라 만날 때 마다 매우 즐겁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만 지내던 시절에서 벗어나 대학생의 신분이 되고 나니,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의 큰 흐름을 대표하는 예를 한번 적어보았다. 두 가지의 경험을 동시에 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어른들이 입 밖으로 나오면 하는 말이 새삼스럽게 현실로 깨닫고 있다.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덧. 친구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패가 있긴 있다. 그렇다면 '형님'으로는 모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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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도의 그 암흑같던 투쟁의 시간들을 보내며, 방학을 한 달이나 미뤄야했던 현실을 묵묵히 겪어나갈 수 밖에 없던 시간이 벌써 두 달 전의 일이 되어 이제 2007년 새학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나이도 한 살 더 먹었고, 학년도 한 학년이 더 올라가게 되어 이제 3학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날이 갈 수록 빨리 지나가는 거 같아 너무나도 슬픕니다.

 이번 2007학년도 새학기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교대 3학년생이기 때문에 과를 대표하는 학년이죠, 즉 집행부를 맡는 학년이 되었습니다. 이미 학회장과 부학회장이 선출되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과를 이끌고 있습니다. 글쎄요.. 그 동안 제가 학교행사에 많이 참여하지 않아서, 이번 학기에는 많이 참여하겠다는 선포를 하기에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냥 밖에서 관망하는 '아웃사이더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저와 과 학우들에게 도움이 될 듯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저는 '학교'에 대한 열정 자체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특히 2학년을 지나오면서 그나마 있던 것도 사라졌습니다.

 저와 거리가 가까운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이번 학기부터는 실습을 위주로 하는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한 과목 한 과목마다 정말 치열하고 머리가 아픈, 또 조모임은 정말 최상과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 학기를 맞이하는 마음이 정말 편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조모임도 숱하게 많이 할 때 마다 저와 같이 하는 조원들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조모임에 조원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불어 지난 학기 조모임에 대해 심심찮은 유감을 표합니다.)

 지난 학기 종강을 할 때, 남들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새깁니다. 그렇다고 서로 인간美가 완전히 식어버리는 분위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또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 학기를 무사히 보내려합니다.

 한 학기 동안 잘 지내봅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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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대학생

喜噫希 / 2007/02/08 02:49
 벌써 대학생활이 2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나는 아직은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못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생활의 겉만 핥은 것 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것은 몇 십년, 아니 이 세상을 오래 살고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진실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파악하는 게 이런 것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은 이런 것이다.'라고 윤곽이나마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상황, 주변의 모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경혐해보고 느껴보는 것일게다. 사회가 인간적인 情이 넘치는 곳인지, 서로 으르렁대는 적자생존의 법칙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왕국인지 말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내가 대학생 신분으로 있는 '교대'라는 곳에서는 후자가 더 강한 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로 남보다 더 나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일반적인 정보까지. 남이 얼마만큼 했느냐를 보고서, 자신은 그것보다 더 많이 해가려 한다. 자신이 꿇리지 않기 위해서 교수에게 아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교수와 다투고, 권위를 넘보려 한다. 서로 성적을 위해 협동하려는 일이 있으면 친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서로 누구냐는 듯 쌩하고 지나간다.

 인간적인 정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서로를 보고 웃는 것이 '웃는게 아닌'것 같은 이러한 작금의 분위기는 나를 참으로 힘들게 한다. 그냥 보이는 겉치레로만 보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참으로 무서운 곳에서, 내가 버틸 힘도, 이유도 없다. 이런 작금의 분위기에 대해서 본인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작금의 분위기를 서로 깨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와 서로간에 믿음이 생기지 않아 그런 분위기를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작금의 '나의 세상'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한탄도 할 자격이 없다. 이런 상황을 어느정도 타개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졸졸 그러한 짓을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주도했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시험과목을 내 나름대로 요약,정리한 것들을 거리낌없이, 정말 아무런 거리낌없이 친구들과 같이 공유하였다. 그것이 전체 학년에 퍼지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손해를 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후반에 공유의 폭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을 되돌아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정 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적자생존의 동물의 왕국 속에서 어떤 무언가의 일을 맡는 다는 건 정말 '미친 짓'인거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안하겠다고 회피하고 앉아 있는데, 내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나는 05학번 내부에서의 회계업무도 관두었고, 그 뒤에 과 전체의 회계를 맡으라는 것과, 05학번 과대도 단번에,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래서 나는 '참 나쁜 대학생'이다. 이것은 내가 '대학생'의 신분으로서 '참 나쁘다'는 것이다. 대학생 신분에서의 나의 행동은 인간적인 모습이 매마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렵다. 이런 나쁜 모습이 계속될 것 같다. 학교 생활에서가 아니라 다른 곳 - 가족, 교회생활 - 에 퍼질 것 같다. 그런 모습이 두렵다. 그래서 初心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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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유난히 '빨갱이'에 대한 혐오증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좌파면 무조건 북한과 접촉되어 있고, 그런 자들은 모조리 잡아 가두어야 한다는 그런거 말이다. 권력의 충실한 방패막이가 되어 준 '빨갱이'는 한국의 이념지형을 상당히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수구가 '보수'가 되어버리고, '보수'가 좌파 빨갱이가 되어버렸다. 그럼 진보주의자는 뭐라 해야 하는지..

 어쨌든, 이런 왜곡된 이념구조 속에서 보다 정확한 나의 이념성향은 어떤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영국의 한 대학에서 만들었다는 경제/사회 이념지향 테스트를 신년들어서 새로 해보았다. 2년 전에 하고 나서, 그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도 궁금했고, 홈페이지를 다시 구성하기 위해서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홈페이지 구상은 블로그 스킨 변경으로 끝났다.)

 우선 결과를 보자면,

The Political Compass

Economic Left/Right: -5.63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0.00


 경제적으로는 마이너스(-) 수치가 나왔으니, 좌파의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권위적인지, 자유주의자인지의 테스트에서는 딱 0.00이 나왔다. 이도 저도 아닌 일명 '회색분자'인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분석을 해보니, 경제성향이 좌쪽으로 많이 기울인 것은 아마 부자에 대한 혐오감에서 나온 것이라 느껴진다. 한국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런 기업이 잘 되는 꼴이 보기 싫었다고나 할까? 또, 하나를 꼽자면 돈보다는 인간을 중요시한 나의 신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우선이냐, 인간의 공동번영이 우선이냐는 질문에서 후자를 택했다.

 사회적으로 권위적이냐 자유적이냐가 딱 제로가 나온건 뭐 어찌 분석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 누려야 될 자유에는 지지하였지만, 국가가 우선이냐 개인이 우선이냐를 두고 보았을때는 국가를 우선순위에 꼽았다.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기에. 그래서 균등하게 0으로 나온지 싶다.

 나중에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나서는 또 어떻게 변할지, 아니면 새로운 경제/사회 이념성향 테스트가 나올지 그건 좀 봐야할 듯 싶고, 어쨌든 나는 굳이 따지자면 중도 좌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중도우파라고 생각하고 있음)

테스트 해보기 : http://myhome.naver.com/deadbird99/political_compass_fram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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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그레인 대학가요제 동영상 보기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2006년 MBC대학가요제가 9월 30일에 열렸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많은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자신들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자리로서, 이번 해의 대상은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혼성듀엣 JJMP가 수상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니라 이번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타지 못한 한 팀에게 관심이 가게 되었으니, 전주교대에 다니는 '뮤즈그레인'팀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등을 연주하는 팀으로 구성된 이들의 노래는 정말 13명이 우르르 모여서 립싱크하는 가수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컬의 특이한 음색, 뛰어난 악기 연주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음색은 정말이지 나를 감동 시켰다.

  허나 내가 그들에게 그러한 감명과 더불어서 나는 그들을 더욱더 우러러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음악교육과'라는 타이틀을 달았을지라도, 애초부터 음악에 대한 지식이 음대에 다니는 사람들의 그것보다도 훨씬 못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대생들은 다 알겠지만, 사범대처럼 과별로 뽑는 것이 아니라, '초등교육과' 단위로 학생들을 뽑고, 성적순으로 자르던지, 자기가 원하는 과를 고르던지 해서 국어, 수학, 과학교육과 등으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미술교육과, 음악교육과라 하더라도 그들은 고등학교 때 책만 파고 들었지, 악기 하나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초짜가 대부분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음악교육과에 들어가서, 자신이 원하는 악기 하나씩을 고르고, 4년 동안 열심히 악기를 배운다. 내가 다니는 교대는 4학년생들이 졸업연주회를 개최하여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다.

  더더군다나 교대라는 곳은 음악교육과라고 할 지라도, 음악에 대한 것만 배우는 게 아니다.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실과, 체육, 음악, 컴퓨터 등등 모든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정작 음악교육과라 하더라도 졸업 할 때 받는 음악에 관련된 전공과목은 약 20학점도 안된다. 또한 학기 동안에는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 다른 일을 벌일 여유도 없다.

  따라서, 그냥 대학생도 아닌, '교대생'이라는 신분으로 저렇게 멋진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이들이 원래 음악적 소질이 뛰어날 수 있을 것이고, 피아노를 애초부터 잘 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라고 해서 네티즌들이 '뮤즈그레인'이 상을 타지 못했다고 서명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인정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교대생들은 교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 나는 이제 선생님이 되겠지.'하는 생각에 자기 계발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교대 교육과정이 매우 힘든 것도 자기 계발에 소홀하게 만든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 뮤즈그레인은 다른 교대생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학가요제에 본선에 오른 것에서, 상을 타지 못했더라도 네티즌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에서, 나는 더욱더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 동시에, 나에게 또 다른 정신적인 충격이었다.

다만, 이수만으로 대표되는 상업주의의 폐해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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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얇다

喜噫希 / 2006/09/06 23:11

'귀가 얇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진짜 귀의 두께가 얇은 꼴을 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남의 예기에 솔깃해서 자신의 줏대가 흔들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그러나, 굳이 '남의 예기'라고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굳이 '남의 예기'가 아니더라도, 주위에 있는 온갖 사물이나 무형의 무언가를 보고서도 자신의 줏대가 흔들린다면,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귀가 얇다고 말할 수 있겠다.

테터툴즈와 네이버.
테터툴즈와 네이버가 경쟁을 벌이는 듯 하다. 테터툴즈의 자유로운 스킨 변경을 장점으로 하여 사람들이 네이버 블로그에서 빠져 나가는 듯한 양상이다. 이 양상은 다음과 테터&컴퍼니가 티스토리(tistory.com)을 만들면서, 굳이 계정이 없이도 자유롭게 태터툴즈를 쓸 수 있게 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에, 네이버 블로그는 '스킨, 퍼스나콘 모두 Free'라는 초유의 결정을 하였고, 아예 네이버 블로그 구조를 사용자가 마음대로 꾸밀 수 있도록 (마치 egloos.com 처럼 말이다) 할 예정이다.

이에 흔들리는 '귀가 얇은 사람'
아, 이런 양상에 테터툴즈로 눌러 앉았다가 네이버가 다시 끌리는 '귀가 얇은 사람'이 있다. 이 귀가 얇은 사람은 2005년 가을부터 꽤나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제대로 된 블로그도 만들지 못했다. 이제 7-8월 들어서 안정을 찾는가 했더니, 다시 줏대가 흔들린다고 한다.

귀가 두꺼워지기를 기대하며
허나, 이번에는 줏대를 다시 잡아 세우려고 한다는 전언이다. 그 분께서 이제 네이버 블로그를 주무대로 삼지 않으신다는 굳은 다짐을 한다고 한다. 다른 일에 대해서도 귀가 얇은 행동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 더욱 더 마음을 잡으셨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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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의 유혹

喜噫希 / 2006/08/16 14:57
 <한겨레21>을 구독한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 '다 되어간다'는 말은 이제 곧 정기구독을 신청할 때가 다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건 상냥한 <한겨레21>직원의 전화 때문이었다. "벌써 1년이 다 되었다니, 시간이 빠르죠?"

그러나 그간 2년이라는 시간을 구독해 오면서, 그 값비싼 정기구독료에 견주어보면,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이유는 <한겨레21>의 질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본인의 게으름으로 그 동안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그리하여 거의 읽지도 않고 책꽂이 한 켠에 첩첩이 쌓여가는 잡지를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정기구독을 그만 두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볼 만하다 싶으면 가판을 통해 구매하려는 것으로 방향을 잡으려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찰나이건만, 오늘 온 정기구독잡지 <한겨레21>에서는 내가 정기구독을 그만 두려는 것을 눈치 챘는지, 기사 맨 앞의 623호 '만리재에서'에서 고경태편집장은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한겨레21> 부흥회에 ‘성령’의 불길이 충만하도록 축복해 주세요. 가판과 온라인 독자 여러 분, 정·기·구·독 신청 전화를 퍼부어 주십시오.”

물론,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에 반대하는 보수세력들의 "뻔뻔함"을 꼬집기 위한 말인 것은 잘 알겠으나, 이제 정기구독을 끊으려는 나에게 편집장님께서 '친히 나서서' 정기구독을 간청하는 것 같아 살짝 웃음이 나온다.

그럼, 1년 정기구독을 한 번 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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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올라와 가고 싶었던 대학을 꼽자면, 나는 단연코 '고려대'라고 말했다. 서울대를 생각하기에는 내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성적은 평균은 아니지만 잘 나와주기만 한다면, 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무너진 수능성적은 나를 고려대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고려대를 향할 수 있었지만, 다시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한 고려대학교는 대학생이 된 이후, 내 머릿속에서 보다는 언론에서 많이 나왔다. 2005년은 고려대학교 100주년이라 신문에서 긍정적 기사로 떠들썩 하기도 했던 것과 동시에, 삼성 이건희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에 대해 학생들의 엄청난 반발을 알리는 기사도 떠들석 하게 울렸다. 게다가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시끄럽다. 고려대병설보건전문대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으로 편입되면서, 전문대생이었던 2,3학년 학생들은 고려대 정식학생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학생회에 대한 투표권도 얻지 못하게 되면서, 학생들은 반발하였고, 언론에서 '교수 감금'이라고 말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거기에 가담하게 된 7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출교"조치라는, 개인에 있어서는 엄청난 아픔을 가져다 주게 되는 조치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출교'라는 징계를 철회하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저 일련의 사건들에 있어서 '고려대학교 학생'이라 함은, 100주년 건물을 지어준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고, 학생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분투하고, 징계를 철회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학생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격렬히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삼성에 취직 안 되면 너희들 때문이다!"라며 돌을 던지는 학생도 고려대학교 학생이요, 보건전문대 출신에게 권리를 주지 않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고려대학교 학생일 것이며, 출교조치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찾아와 "이러지 말라"고 말하고, 남 몰래 징계철회 플랜카드로 찢는 사람도 분명 고려대학교 학생이다.

  만약, 내가 수능을 잘 치르고, 고려대에 입학해 지금 고려대학교 학생이 되었으면, 저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지금 내가 교대에서 보이는 태도를 그대로 고려대에서 행했다면, - 물론 교대에서의 사안은 다르겠지만 - 박사학위 준다고 시위하는 사람, 징계철회를 위해 농성하는 학생들을 보고, 그들을 따랐을까? 같이 시위에 나섰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심지어,그들을 '좌파'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고려대'에 들어왔다는 'PRIDE'로 말미암아, 고려대라는 메리트를 자랑으로 삼으며, 콧대를 높이며 다니면서, 투쟁하는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는' 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있는 위치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비열한 인간'으로 변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에게 친구가 하나 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였고, 그 친구도 고려대학교에 가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엘리트 집단에 가서 엘리트 집단을 깨버리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친구다. 그는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하고 있었고, 나와 '삼성'에 대한 대화를 할 때도, 적어도 'About 삼성'에 대한 건 진지하게 대화했었다. 그랬던 이 친구는 지금 고려대학교 사범대에 다니고 있다. 서로 다른 대학교에 다닌 이후엔, 이 친구를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작년 4월에 만난게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고려대학생'인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친구의 블로그를 보고 있으면 정말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반전평화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 같다. 게다가 친구는 사범대에서 큰 일을 맡으며, 학교와의 마찰에도 서슴없이 항의를 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이 친구는 징계철회를 위한 농성에도 함께 참여하는 듯 보인다, 아니 참여한다.

  역시나, 이 친구는 고려대에 가서 적어도 내가 들었던 그만의 원칙을 꿋꿋이 지키는 듯 보인다. 고려대라는 메리트를 등에 업고 자신을 엘리트라며 콧대를 높이며 다니는 학생으로 변하지 않고, 이렇게 부당한 것에 대해 맞서 싸우는 친구를 보면, 참 대단하며, 흐뭇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 친구를 지켜보게 되면, 내가 고려대에 들어가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처럼 그 안에서 '자유, 정의, 진리'를 위한 자신만의 이념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 쫓겨 (혹은 이 현실을 자랑스러워 하며) 콧대를 높이며 다녔을 나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기에 난 그저 이 친구가 자랑스러울 뿐이다.

P.S. 교대에서도 이런 이념을 형성할 곳은 없을까?
Posted by 맑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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